무신사가 지난달 첫 "AI 네이티브" 신입 개발자 공채 결과를 발표했다. 약 2000명이 지원해서 66명이 최종 합격, 현업 배치까지 완료됐다. 경쟁률 30:1. 숫자 자체보다 흥미로운 건 "AI 네이티브"라는 채용 기준이 패션 이커머스 회사의 개발자 공채에 붙었다는 사실이다.
무신사가 원한 건 "코딩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신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사적 AI 리터러시 강화를 선언했다. 콘텐츠 제작, 개인화 추천, 운영 자동화 등 거의 모든 부서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방향이었고, 이번 신입 공채는 그 연장선이다.
"무신사 루키" 프로그램은 6개월 인턴십 후 전환 채용하는 구조다. 온·오프라인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거치는데, 핵심은 단순 알고리즘 풀이가 아니라 생성형 모델과 ML 도구를 실무 문제에 어떻게 통합하는지를 본다는 점이다. 프롬프트 설계 역량, API 활용 능력,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고 검증 체계를 세울 수 있는지 — 이런 항목들이 면접 테이블에 올라왔다.
패션 플랫폼이 왜 이런 기준을 세웠을까. 무신사의 상품 수는 수천만 개다. 개인화 추천 하나 고도화하려면 ML 파이프라인부터 서빙 인프라까지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검색 품질 개선, 이미지 기반 유사 상품 추천, 리뷰 분석을 통한 트렌드 예측 — 모두 전통적인 백엔드 역량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다. "입사 후에 가르치겠다"가 아니라 "들어올 때부터 이미 쓸 줄 아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투자금이 커질수록 백엔드는 줄어든다
무신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트업 채용 플랫폼 그룹바이의 데이터를 보면 구조적 변화가 선명하다.
| 투자 단계 | AI·데이터 직군 비율 |
|---|---|
| 시드~프리A | ~15% |
| 시리즈 A~B | ~24% |
| 시리즈 C 이상 | ~34% |
반대로 백엔드·프론트엔드·풀스택 같은 전통적 웹/앱 포지션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비중이 줄어든다. 자금이 확보될수록 기업들은 신규 서비스 개발보다 지능화와 운영 자동화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지난 5년간 데이터·ML 관련 직군 채용 비율은 3배 가까이 상승했다.
한국경제매거진의 HR 담당자 설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6년 채용 시장의 최대 변화 요인으로 "AI 확대에 따른 인력 축소 및 질적 채용 전환"을 꼽은 응답이 63%, "AI 리터러시 검증"이 46%였다.
"사람 20% 줄여라"
변화의 배경에는 경영진의 압박이 있다.
글로벌 인재채용 기업 탈렌트풋의 CEO 카밀 페터는 최근 "많은 이사회가 CEO에게 전체 인건비의 20%를 감축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그 감축분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밝혔다. CEO 네트워킹 자리에서는 "자동화로 최소 20%를 대체할 계획이 없다면 미래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기업의 85%가 이미 생성형 도구를 도입했고, 10곳 중 8곳은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기업의 20%에서 자동화로 인해 중간 관리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자동화로 사람을 줄이려면, 자동화를 구축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체 헤드카운트는 줄이면서 ML·데이터 직군은 오히려 늘리는 기묘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신사가 "AI 네이티브"를 별도로 뽑는 것도 이 맥락 — 전체 조직은 효율화하되, 그 효율화를 구현할 핵심 인력은 공격적으로 확보한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AI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채용 공고에 등장하기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 그런데 벌써 면접의 핵심 검증 항목이 됐다.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건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롬프트를 잘 쓰면 리터러시가 높은 건가? LangChain으로 RAG 파이프라인을 짜본 경험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할루시네이션 패턴을 이해하고 출력 검증 체계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하나? 회사마다 다르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팀마다 기대치가 다르다.
무신사의 66명이 현업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는 6개월 뒤에나 알 수 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내년엔 더 많은 한국 테크 기업들이 채용 공고에 "AI 네이티브"를 붙일 것이고, 실패하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코딩만 잘하면 된다"는 시대가 한국에서도 끝나가고 있다는 건 이미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