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4월 27일 도쿄 스시테크 서밋(SusHi Tech Tokyo 2026) 메인 세션에 올랐다. 최수연 대표, 네이버랩스 석상옥 대표, 네이버클라우드 김주희 디렉터가 45분을 할애한 발표의 제목은 "AI Design as Social Infrastructure." 기술 스펙 자랑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서 AI가 뭘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 자리였다. 내 눈에는 기술 발표가 아니라 일본 지자체를 겨냥한 BD 피치로 읽혔다.
케어콜 4년 — 독거노인 안부의 스케일링 문제
하이퍼클로바X 기반의 케어콜(CareCall)은 AI가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다. 2022년 첫 출시 당시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어르신이 AI 전화를 진짜 받을까? 대화가 성립은 할까? 4년이 지났다. 현재 140개 이상의 한국 지자체가 케어콜을 운영한다.
단순한 "식사하셨어요?" 수준이 아니다. 대화 패턴에서 감정 변화, 건강 이상 신호, 사회적 고립 정도까지 감지한다. 복지 담당 공무원 한 명이 수백 명의 어르신을 관리하는 현실에서, 매일 전화 한 통은 물리적 불가능의 영역이다. 케어콜은 이 불가능을 해결한 게 아니라 — 이 불가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거다.
한국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를 돌파했다. 독거노인 200만 시대. 수치로만 보면 이미 심각한데, 체감은 더하다. 지방 소멸 가속화로 읍면 단위 돌봄 공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케어콜이 140개 지자체로 확산된 건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에 더 가깝다.
이즈모행 티켓
일본의 고령화율은 29.3%로 세계 1위다. 한국이 '막 진입했다'면 일본은 '10년 전에 도착한' 나라다. 네이버가 시마네현 이즈모시에 케어콜을 깐 건 사회공헌이 아니다. 일본 지자체 시장은 한국보다 규모가 크고 디지털 전환 예산도 두텁다. 라인웍스(LineWorks)로 이미 일본 소상공인 시장에 깊이 박혀 있는 네이버 입장에서, 케어콜은 그 기반 위에 올라가는 두 번째 레이어다.
소버린 AI, 네이버식 변주
최수연 대표가 꺼내든 개념 중 눈에 띄는 건 "각 나라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다. 원래 이 용어는 엔비디아 젠슨 황이 국가별 GPU 인프라·데이터 주권 맥락에서 대중화한 말이다. 네이버의 번역은 좀 다르다. 데이터 주권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의 주권.
한국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AI, 일본어 경어 체계를 실수 없이 구사하는 AI. GPT-4o가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경상도 할머니가 "아이고 뭐 그냥 그라지"라고 답했을 때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결을 읽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네이버는 이 차이를 경쟁 해자로 쓰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복잡하고 노인 인구가 많은 시장에서 글로벌 LLM과의 차별점을 "문화를 이해하는 언어 모델"에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가 말하는 소버린 AI는 GPU를 팔기 위한 프레임이었다면, 네이버의 소버린 AI는 서비스를 팔기 위한 프레임이다. 같은 단어, 다른 비즈니스 모델. 흥미로운 건 이 프레임이 일본에서 먹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AI"에 대한 수요는 기술 선진국일수록 역설적으로 강하다. 미국산 AI가 범용적으로 뛰어나도, 자국 고령층과의 대화에 그걸 쓰겠다는 지자체장은 드물다.
인프라라 불러야 예산이 붙는다
네이버가 AI를 '제품'이 아닌 '사회 인프라'로 포지셔닝하는 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전기, 수도, 도로처럼 인프라로 분류되면 정부 예산으로 들어간다. B2C 앱 하나 파는 것보다 지자체 단위 다년 계약의 생애가치(LTV)가 훨씬 길다.
도쿄에서의 45분은 기술 쇼케이스가 아니었다. 케어콜 140개 지자체 레퍼런스를 깔고, 이즈모 파일럿 사례를 보여주고, "우리는 당신네 문화를 이해하는 AI를 만드는 회사"라고 포지셔닝한 뒤, 일본 지자체 예산 담당자에게 어필한 세일즈 피치. 발표장이 국제 컨퍼런스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