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he Block이 보도 하나를 터뜨렸다. 토스가 자체 블록체인 메인넷 구축과 네이티브 토큰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2300만 MAU를 가진 핀테크 공룡이 자기 체인을 만들겠다고? 이건 크립토 업계의 소식이 아니라, 한국 결제 인프라의 판이 흔들릴 수 있는 신호다.
조용히 쌓아온 타임라인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다. 되짚어보면 꽤 체계적인 준비가 있었다.
2025년 6월, 토스는 'TOSSKRW'를 포함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 24건을 특허청에 등록했다. 24건이다. 이름 하나 테스트한 수준이 아니라,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깔아둔 것에 가깝다. 올해 2월부터는 블록체인 엔지니어 채용을 본격 개시했다. 채용 공고의 디테일이 예사롭지 않다 — 지갑 시스템, API 및 트랜잭션 처리, 노드 운영, 암호화 서명, 금융 컴플라이언스. "블록체인 R&D 해볼 사람" 수준의 공고가 아니라, 프로덕션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팀이 내는 공고다.
그리고 4월 6일, The Block 보도. L1 또는 L2 메인넷을 검토 중이며, 최종 결정은 아직이라고.
L1이냐 L2냐 — 이 선택이 토스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기술적으로 이 갈림길은 토스가 블록체인에서 뭘 하려는지를 규정한다.
L1은 바닥부터 짓는 독립 블록체인이다. 자체 합의 알고리즘, 자체 수수료 체계, 완전한 네트워크 통제권. 대신 대가가 크다. 합의 메커니즘 설계부터 검증자 네트워크 확보, 보안 감사까지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다. 카카오가 밀었던 클레이튼이 이 길을 걸었다. 7년이 지난 지금 Finschia와 합병해 Kaia로 재출발하는 중이다. L1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한국 기업일 것이다.
L2는 이더리움 같은 기존 체인 위에 올리는 방식이다. 보안은 메인넷에 위임하고, 속도와 비용에서 이득을 챙긴다. Coinbase의 Base, 소니의 Soneium처럼 기업형 L2가 최근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개발 속도가 빠르고, 이미 형성된 DeFi 생태계와의 호환성도 따라온다.
토스가 L1에 끌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결제 인프라는 TPS(초당 트랜잭션 처리량)가 생명이고, 수수료 구조를 100% 통제해야 한다. 남의 체인 위에서 가스비 변동에 노출되는 건 결제 서비스에는 치명적이다. 반면 L2는 빠른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무시 못 할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토스가 L2로 시작하되 L1 전환 옵션을 열어두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규제가 불확실한 지금, 풀 베팅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발목을 잡는 건 기술이 아니라 법이다
토스가 최종 결정을 못 내리는 핵심 이유는 기술적 난도가 아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토큰 발행, 스테이블코인 운영, 암호화폐 ETF 규칙을 포괄하는 이 법안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7월에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소 규제에 가까운 것이지, 토큰 발행에 대한 종합 프레임워크는 아니다. 토스가 TOSSKRW를 발행하려면 이 법이 필요하다. 법 없이도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기관 투자자와 파트너사를 설득할 근거가 없다.
아이러니한 건, 한국이 망설이는 사이에 경쟁 환경은 이미 바뀌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2023년에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끝냈고, 홍콩과 싱가포르도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립했다.
핀테크가 자기 체인을 갖고 싶은 건 결국 돈의 흐름 때문이다
한 발 뒤로 빠져서 보자.
한국의 카드 결제 생태계는 카드사→VAN사→PG사가 각각 마진을 떼는 다층 구조다.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결제 수수료는 1.5~3%다. 토스가 자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를 구현하면, 이 중간 레이어를 상당 부분 건너뛸 수 있다. 2300만 사용자의 결제 흐름이 자체 체인 위로 올라간다면, 그건 핀테크 기능 하나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의 재편이다.
물론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사용자가 "블록체인 결제"를 의식하는 순간 대중 서비스로서는 실패다. 토스의 강점은 복잡한 금융을 단순하게 포장하는 UX에 있었다. 블록체인이 밑바닥에 깔려 있되 사용자는 전혀 모르는 구조 — 토스페이로 찍었는데 뒤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움직이는 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짚어야 할 게 있다.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금융 라이선스를 풀세트로 갖춘 회사가 자체 화폐 발행까지 나서면, 은행과 핀테크 사이의 구분선이 사실상 사라진다.
변수는 국회에 있다
토스가 올해 안에 결정을 내릴지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의 국회 일정에 달렸다. 하반기에 법이 통과되면 토스의 행보는 급물살을 탈 것이고, 또 한 번 미뤄지면 상표만 등록해둔 채 대기 모드가 이어질 수 있다. 클레이튼이 걸어온 7년을 본 업계는 L1의 무게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토스의 선택이 더 주목된다.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한국 핀테크가 블록체인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줄 첫 번째 본격 케이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