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3월 말 '카카오툴즈'를 대폭 개편하면서 올리브영, 무신사, 현대백화점, 삼쩜삼, 마이리얼트립, 사람인, 우리의식탁까지 한꺼번에 끌어들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국내 첫 MCP 기반 개방형 플랫폼 'PlayMCP'도 베타로 열었다. 두 움직임을 따로 보면 그냥 서비스 업데이트지만, 같이 놓으면 에이전트 시대를 향한 포석이 꽤 선명해진다.

채팅창 하나로 커머스를 삼키는 구조

'ChatGPT for Kakao'라는 이름만 보면 오픈AI에 종속된 것 같다. 실제 구조를 뜯어보면 그 반대에 가깝다.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 위에 GPT를 올리되, 그 위에 다시 카카오툴즈를 얹은 3층 구조다. 사용자가 채팅창에서 "올리브영에서 선크림 추천해줘"라고 입력하면 GPT가 직접 답하는 게 아니라 올리브영의 MCP 서버가 실시간 상품 데이터를 끌어와 응답을 구성한다.

대화의 허브를 메신저가 쥐고 있다는 게 진짜 핵심이다. 모델이 GPT든 카나나든, 사용자 접점은 한 군데에 고정된다. 마이리얼트립에서 항공권을 검색하고, 사람인에서 채용공고를 뒤지고, 우리의식탁에서 레시피를 찾는 행위가 전부 하나의 대화창 안에서 일어난다. 별도 앱을 열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용자 경험이 바뀐다. 거래 수수료를 걷지 않아도 트래픽과 사용 패턴이 메신저에 축적되니,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득이 분명하다. 슈퍼앱 전략을 에이전트 시대에 맞게 리부트한 것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파트너사 선정이다. 올리브영(뷰티), 무신사(패션), 현대백화점(리테일), 삼쩜삼(세금), 마이리얼트립(여행), 사람인(채용), 우리의식탁(식품). 카테고리가 겹치지 않게 골랐다. 이 조합이면 일상 소비의 상당 부분을 채팅창 하나가 커버하게 되고, 각 파트너사 입장에서도 자사 앱 밖에서 새로운 유입 채널을 확보하는 셈이다.

PlayMCP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개발자가 카카오 계정 하나로 접속해서 자기가 만든 MCP 서버를 올리고, 실제 대화에서 테스트하고, 남이 만든 도구도 자유롭게 갖다 쓸 수 있는 공간. 그게 PlayMCP다. "국내 최초 개방형 플랫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기술적 성취보다는 전략적 포석이 본질이다.

에이전트 플랫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결 가능한 서버 수다. 앱이 많아야 앱스토어가 살듯, 도구가 많아야 에이전트가 쓸모있어진다. 무료 놀이터를 운영하는 비용은 생태계 선점이라는 보상으로 회수하겠다는 셈법이고, 이건 애플이 초기 앱스토어에서 개발자 도구를 무료로 풀었던 것과 같은 논리다.

Kanana-2 — 32B인데 3B만 쓰는 설계

외부 모델에만 기대면 가격 정책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올해 1월 공개한 Kanana-2는 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카드다.

설계가 흥미롭다. MoE(전문가 혼합) 구조를 택해 전체 파라미터는 32B이지만, 추론 시 활성화되는 건 3B에 불과하다. 거대 모델급 지능을 유지하면서 연산 비용은 소형 모델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에이전트 워크로드는 단일 질의에 모델을 여러 차례 호출하기 때문에 추론 비용이 곧 병목이 되는데, 이 아키텍처는 정확히 그 지점을 겨냥한다. 에이전트가 하나의 작업을 처리하는 데 모델을 5번, 10번 부르는 상황에서 매 호출마다 32B 전체를 돌리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3B만 활성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종 모델을 동시에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부 에이전트 시나리오에 맞춰 지시 이행 정확도와 도구 호출 성공률을 끌어올린 버전이다. "한국어 잘하는 범용 언어모델"이 아니라 "MCP 서버를 정확히 호출하는 특화 모델"을 지향한다는 메시지가 설계 자체에 녹아 있다.

네이버와 갈라지는 길

비슷한 시기 네이버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HyperCLOVA X를 접고 AMD GPU로 인프라를 갈아타면서, 검색과 쇼핑에 AI를 직접 내재화하는 쪽을 골랐다. 외부 개발자보다 자체 서비스 품질에 자원을 몰아넣는 전략이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가 쿠팡 사태 이후 DAU 131만까지 치솟은 건 이 전략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먹히고 있다는 증거다.

카카오의 선택은 정반대다. 올리브영이든 무신사든 남의 서비스를 프로토콜 하나로 연결하면 되니 통제력은 줄지만 확장성은 크다. 앱스토어 vs 자체 앱 —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답이 없다.

다만 이 베팅 전체가 "MCP가 업계 표준으로 굳어진다"는 전제 위에 놓여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하다. Anthropic이 제안한 프로토콜이 실제로 표준이 되면 PlayMCP에 쌓인 서버가 고스란히 무기가 된다. 구글이나 오픈AI가 다른 규격을 밀어붙이는 시나리오에서는 전부 갈아엎어야 한다. 올해 하반기, 파트너사를 몇이나 끌어모았느냐가 이 베팅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