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works가 4월 15일 발행한 Technology Radar 34호는 단어 하나를 전면에 내세웠다. Cognitive debt, 인지 부채. 기술 부채(technical debt)야 이 업계에서 수십 년 우려먹은 개념이지만, 인지 부채는 결이 다르다. AI가 생성한 코드가 시스템에 쌓이면서 그 코드를 이해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술 부채와 인지 부채
기술 부채는 "이거 나중에 리팩토링해야지" 하면서 미루는 빚이다. 코드가 지저분해도 작성한 사람은 최소한 의도를 안다. 인지 부채는 다르다. 코드를 작성한 주체가 사람이 아니니 의도 자체가 블랙박스다.
Copilot이든 Claude든 Cursor든, AI 코딩 도구가 뱉어낸 200줄짜리 함수를 승인 버튼 한 번으로 머지하는 게 일상이 됐다. 코드리뷰를 한다 해도 "동작하니까 LGTM"으로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제는 6개월 뒤 그 함수에 버그가 터졌을 때다. 원래 왜 이렇게 짰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AI에게 물어봐도 컨텍스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Thoughtworks는 이걸 '인간과 소프트웨어 시스템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코드베이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그걸 머릿속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오히려 줄어든다. 기술 부채가 코드의 품질 문제라면, 인지 부채는 코드와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다.
Radar 34호의 처방전
Thoughtworks의 답은 의외로 오래된 것들이다.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 DORA 메트릭, 테스트 가능성. AI 시대에 새 프레임워크가 필요한 게 아니라, 기존 엔지니어링 기본기를 더 철저히 지키라는 것이다. 코딩 에이전트가 강력해질수록 feedforward 제어(스펙 문서, Agent Skills)와 feedback 제어(mutation testing)를 결합한 하네스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은 이걸 체감하고 있나
이미 체감하고 있다. 카카오페이가 최근 도입한 SDD(Spec-Driven Development)가 대표적이다. "바이브 코딩으로 빠르게 짜면 된다"는 초기 열기가 식고 나서, 스펙 문서를 먼저 쓰고 에이전트에게 정확한 맥락을 주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Thoughtworks가 말하는 feedforward 제어와 정확히 같은 방향이다. 코드가 나오기 전에 의도를 기록하면, 인지 부채의 원금 자체가 줄어든다.
우아한형제들의 사례도 흥미롭다. 3월에 공개한 기술블로그에 따르면 비개발 직군 대상으로 AI 도구 교육을 5주간 진행했다. 결과는 150분짜리 업무가 25분으로 줄었다는 것인데, 정작 교육의 핵심은 도구 사용법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방법론이었다.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려면 결국 문제를 깊이 이해해야 하고, 그 이해가 곧 인지 부채를 줄이는 방어막이다.
같은 팀이 MCP stdio를 활용해 AI 자산을 중앙에서 관리하는 구조를 만든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개발자마다 제각각 다른 프롬프트, 다른 컨텍스트로 AI를 쓰면 코드의 일관성이 깨진다. 통일된 AI 자산 레이어는 "같은 맥락에서 같은 품질의 코드가 나오게" 하려는 시도다. 인지 부채를 개인이 아닌 팀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설계 의도가 읽힌다.
빚은 쌓인다, 문제는 이자율
기술 부채는 리팩토링이라는 상환 수단이 명확하다. 시간을 내서 코드를 정리하면 된다. 인지 부채의 상환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이 코드를 이해하는 능력"은 개인의 머릿속에 있고, 문서화만으로는 완전히 외재화할 수 없다. AI가 코드를 더 빠르게 쏟아낼수록 이자는 복리로 불어난다.
한국 테크 기업들의 궤적을 보면 패턴이 보인다. 2024년에는 AI 도구 도입에 열을 올렸고, 2025년에는 어떤 도구가 좋은지 비교했다. 2026년 화두는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Thoughtworks Radar가 인지 부채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올린 건 이 흐름에 라벨을 붙여준 것뿐이다.
실체는 이미 코드베이스 안에 조용히 쌓이고 있다. 문제는 이 빚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기술 부채는 빌드 타임이 느려지고 배포가 깨지면서 신호를 보낸다. 인지 부채는 시니어 개발자가 퇴사하는 날, 장애 원인을 추적하는 데 일주일이 걸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